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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의 FM, 웃기려면 이렇게 - <극한직업>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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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의 FM, 웃기려면 이렇게 - <극한직업>

도르비 2019. 2. 15. 23:38

"세상에 이런 맛은 없었다. 치킨인가 갈비인가 수원 왕 갈비 통닭"




마약검거팀이 잠복근무를 위해 치킨집을 차렸는데 돌연 맛집? 정신 나간 설정으로 시선을 확 끌더니 본편은 예고편보다 더했다. 혼자서 계속 큭큭큭거리며 보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리고 어느덧 천만을 찍게 됐다. 시기를 잘 탔다, 신파가 없다, 등등 자고일어나니 천만? 같은 상황을 설명해 보고자 하는 말은 많았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특별할 것 없다고 본다. 하지만 그 '정석스러움'이 특별했기에 자고일어나니 천만이 된 것 아닐까.



웃음에도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다. 약자를 못난 존재로 격하시키면서 흘리는 웃음은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 웃음을 만드는 존재만 즐거울 뿐이다. 자신의 권력을 확인받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신체를 괴롭히는 게 주가 되는 웃음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그들의 상황이 웃기다기 보다는 그들이 아플 것 같다는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비판하면서 흘리는 웃음은 어른들을 불편하게 한다. 함께 웃기에는 그들 또한 비웃음의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수한 해학으로 끌리는 웃음은 자신의 입장과 관계없이 함께 웃을 수 있다. 그렇기에 <극한직업>은 설에 잘 어울리는 영화였다. 가족들이 함께 '재미'를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극한직업>은 해학의 정석을 보여주는 영화다. 등장인물들은 초반에 어리숙하고 다소 무능해 보이는 인상을 준다. 마냥 무능하기만 했다면 관객들은 등장인물을 보면서 마냥 답답하기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실 그들의 필드에서 정상급 능력을 보여주는 인물들이었다. '힘을 숨긴 주인공' 클리셰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클리셰가 지겹게 느껴지지 않도록 잘 버무렸다. 오히려 그들의 상황에 따른 무능함의 이유를 개연성있게 설명해 주면서 단순히 '힘숨찐'으로 보이지 않게 해준다.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먼저 승진하는 후배를 대할 때, 자존심 상해 하다가도 고기 사준다니 쫄래쫄래 따라가는 모습하며, 부인의 감동어린 걱정에 되려 '사실은 퇴직금'때문에 눈물 보이는 반장님의 모습은 반전이라고 보이다가도 꽤 현실적이기도 하다. 마약 중간책을 잡을 때도 예산이 부족해 제대로된 장비가 지급 되지 않는 것도 그렇다. 본업을 위해 닭집을 차렸지만 되려 본업보다 더 흥해서 아예 주객전도가 돼버리는 상황까지. 어리버리해 보이더라도 그 속에 교묘히 현실을 숨기고 있는 것. 그것이 해학이고 그래서 웃게 된다. 


▲이렇게 분노하다가도 소고기 앞에서는 급 분노조절 되는 모습, 참 직장인이다.


클리셰는 부숴도 기대는 충실하길


웃음은 어렵다. 계속 웃음만 넣으려고 하면 지겨워지기 때문에 완급 조절을 잘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기존 코미디 영화들은 그 완급을 중간에 슬픈 장면을 넣음으로써 하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없이 낄낄거리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려야 할 것 같은 상황을 계속 반복하니,  "또 신파냐?" 라고 불만어린 감상평들이 지속적으로 올라왔다. 그 어려운 걸 <극한직업>은 새로운 방식으로 해냈다. 한 방 큰 눈물 보다는 자잘한 웃음과 자잘한 일상을 반복하는 것으로 이어갔다. 완급조절에 고민한 흔적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극한직업>은 코미디 영화라는 장르에 거는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다. 특히 '설에 가족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영화' 카테고리에 잘 안착했다. 

장르에 거는 기대란 결국 소비자가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고려하는 '소비심리'다. 관객은 공포 영화에 오싹하고 소름끼치는 공포를, 스릴러 영화에 흥미진진하면서 땀을 쥐는 긴장감을, 액션 영화에 화려하고 화끈한 액션을 기대한다. 이런 기대에서 하나 더 추가 되는 정도는 의외성을 부여해 색다른 재미를 이끈다. 액션 영화지만 논쟁거리를 던져 준 <시빌 워>, 오싹하면서도 긴장되지만 한편으로 수수께끼 같아 영화 본 후에 이야깃 거리가 더 많았던 <곡성> 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영화들도 본질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의 본질은 충실하면서 다른 개성이 추가되었기에 유의미한 것이다. 물론 그 영화들 처럼 <극한직업>은 색다른 개성이 강하진 않았다. 하지만 본질에 지극히 충실했던 영화였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빛을 발했다. 코미디 다운 코미디를 보고싶다는 관객들의 기대심리를 만족시켰다. 그거면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